글 전효진 기자
기사입력 2019-01-21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는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표상이다.
조선 시대 왕조정치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며 민주주의 태동지가 되었고, 이렇게 뿌려진 씨앗들은 월드컵부터 촛불집회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울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싹을 틔워, 마침내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알리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아픔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의도적으로 이 공간들을 훼손시켰는데, 그 상흔은 1990년대 문민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수립하기 전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1993년 조선총독부의 철거를 시작으로 경복궁의 단계적 복원이 이뤄졌고, 2009년에는 광화문도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됐다. 이와 더불어 서울시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지닌 이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고자, 세종대로의 차로를 16차선에서 10차선으로 축소하고 광장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성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개장과 동시에 거센 비판을 받았다. 세종대로 중앙에 위치하여 보행자의 접근이 어렵고 역사성 회복도 미흡하다는 지적이었다. 조성 이후에도 편의시설의 부족, 주변 시설들과의 연결성 부족으로 ‘거대한 중앙분리대’, 혹은 ‘쉴 곳 없는 광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광화문광장을 보행중심의 열린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문화재청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밑그림을 그려왔다. 그 결과물인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이 지난해 4월 발표됐다.
핵심은 ‘역사성’과 ‘연결성’이다. 개장 당시부터 역사성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만큼 이번 사업을 통해 광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와 율곡로를 우회시키고 일제강점기에 훼손됐던 월대를 복원하여, 이 일대의 역사성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의 광장이 더는 거대한 중앙분리대로 남아있지 않도록,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하고 광장과 주변 도시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게 큰 크림이다.
6월부터는 150여 명의 집단지성 거버넌스인 ‘광화문시민위원회’와 시민,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관한 10가지 이슈와 과제를 도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침을 마련하여 지난 10월, 기본계획(안) 구체화를 위한 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과제는 역사자원 보존과 활용, 주변지역 연계, 광장 디자인, 조경, 도로 및 교통계획, 친환경 계획, 안전 등의 관점을 두루 고려하여, 역사성과 시민성, 보행성의 회복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주어진 사업대상지는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사직‧율곡로 등 도로를 포함하여 총 126,100m2지만, 광장과 접한 주변지역까지 아우르는 광역적 공간 계획도 함께 요구되었다.
약 3개월간 진행된 공모에는 17개 국가에서 총 70개 팀(국내 38개, 해외 32개), 202명의 건축 및 조경 전문가가 참여하여 ‘광화문광장’이라는 상징성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7인의 심사진(승효상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유홍준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유나경PMA엔지니어링 도시환경연구소 소장, 정욱주서울대학교 교수, 손기민중앙대학교 교수, 도미니크 페로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쳐, 프랑스, 아드리안 구즈웨스트 8, 네덜란드)은 1차 심사를 통해 10개 팀을 선정했으며,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진 2차 심사를 거쳐, 지난 1월 21일 최종 당선자를 선정했다.
당선작은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 주.유신 + 주.선인터라인건축 +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팀의 “Deep Surface: 과거와 미래를 깨우다”.
이 작품은 시가 제시한 기본방향을 반영해 크게 세 가지 목표를 구현하고 있다. 육조거리의 복원을 통한 국가상징축(북악산~광화문광장~숭례문~용산~한강)의 완성. 지상‧지하광장의 입체적 연결을 통해 시민이 주인인 다층적 기억의 공간을 만들기.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는 한국적 경관의 재구성(북악산~경복궁~광화문)이다.
공간 구성의 핵심 개념은 지상은 ‘비움’ 지하는 ‘채움’이다. 경복궁 전면의 ‘역사광장'(약 3만6천m2)과 역사광장 남측으로는 ‘시민광장'(약 2만4천m2)이 조성된다. 지상광장은 질서 없는 구조물과 배치를 정리해 경복궁과 그 뒤 북악산의 원경을 광장 어디서든 막힘없이 볼 수 있고, 다양한 대형 이벤트가 열릴 수 있도록 비움의 공간으로 조성한다. 이를 위해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상을 세종문화회관 옆과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각각 이전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지하광장은 콘서트, 전시회 같은 문화 이벤트가 연중 열리는 휴식, 문화, 교육, 체험 공간으로 채워진다.
지상과 지하는 선큰 공간으로 연결된다. 역사광장 초입부에 조성되는 선큰 공간은 지하광장에서 지하철까지 이어진다. 방문객들은 북악산의 녹음과 광화문의 전경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역사광장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승효상 심사위원장은 “당선작은 광장 지상을 비워서 강력한 도시적 역사적 축을 형성하고, 이렇게 비워진 공간에 다양한 시민활동을 담고자 광장 주변부 지하공간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지하도시를 실현 하였으며, 선큰공간을 적절히 배치하여 시민의 접근성과 공간의 쾌적성을 높였다. 따라서 현재 교통섬 같은 광화문광장이 주변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시민의 일상적인 공간을 회복하고 역사도시 서울을 새롭게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을 전했다.
한편, 서울시는 당선작을 발표하면서 2월부터 기본 및 실시설계에 착수, 올해 안에 설계를 마무리하고 2021년까지 광장 조성을 완료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섯 가지 정책 방향도 함께 내놓으며 사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했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천 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무리한 추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차선 축소에 따른 교통 체증 등의 현실적 문제부터, 국가 상징축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도시적 문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을 둘러싼 정치적 이념 문제까지, 사업 진행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곳곳에 산적해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광장을 조성하는 작업인 만큼, 충분한 소통과 의견 수렴 없이는 10년 후 또다시 새로운 광장을 만드는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
속도보다는 방향, 목표보다는 목적이 먼저다. 그 방향과 목적이 어디로 향할지, 모두가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자료제공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당선작
Deep Surface: 과거와 미래를 깨우다 _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주.유신+주.선인터라인건축+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광화문광장은 단일한 표면이 아니다. 역사의 깊은 시간적 지층이 있고, 서로 충돌하며 보완하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으며, 일상과 비일상을 연결하는 삶의 장이 존재한다. 이제 광화문광장의 표면은 깨어나 상실되었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 무감각했던 경직된 시간에서 깨어나 역사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고, 기능에 종속된 도로의 표피에서 벗어나 진정한 시민의 장소로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사람을 위한 다양성의 시간과 장소를 만들기 위해 깊은 표면의 전략을 통하여 세 가지 목표를 구현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축으로서 ‘주작대로의 계승’
대한민국의 상징축인 주작대로를 새롭게 계승한다. 주작대로는 6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오랜 도시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계승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되돌리고자 함이 아니다. 끊어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새로운 현재로 잇는 작업이다. 복원된 주작대로는 대상지의 역사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 터의 장소성을 새롭게 인식시킬 것이다.이와 함께 향후 북악산, 숭례문, 용산, 한강으로 이어지는 국가상징 축으로 확장되어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주작대로의 계승은 광화문 광장의 수평적 확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확장된 주작대로의 영역은 광장과 주연부의 토지와 건축물, 두 개의 물길, 더 나아가 북악산을 포함한다. 주작대로는 주변 가로와 지하보행로와 연결됨으로써 확장된 보행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며 시민이 주인인 다층적 기억의 공간을 형성할 ‘수직도시와 지하도시의 연결’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며 시민이 주인인 다층적 기억의 공간을 형성하도록 수직도시와 지하도시를 연결한다. 광화문광장의 수직적 확장은 단절된 다양한 도시적 가능성을 연결하여 통합된 공간의 프로그램적 잠재성을 극대화한다. 지상의 광장은 도시의 보이드로서 대형 이벤트를 담을 수 있는 비일상적 공간이 되며 지하의 광장은 다양한 도시적 활동을 유도하는 소규모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향후 지하는 도시철도와 연결된 플랫폼으로 기능을 한다. 광장과 주변 건물의 옥상, 공공공지, 가로는 광장과 연계된 체험의 공간을 형성한다. 광장과 건물이 만나는 경계부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테라스로 바뀌어 유연한 경계 영역을 만든다.이곳은 도심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매개적 공간이 될 것이다.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며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국적 경관의 재구성’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며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국적 경관을 재구성한다. 상징적 건축물을 중심에 놓고 정형적으로 열식된 가로수가 규정하는 19세기 서구의 전형적 도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한국적 상징의 도식을 찾고자 한다. 동궐도와 감영도에서 보여지듯, 한국의 공간 배치는 지형지세에 순응되어, 건물과 숲이 조화된 경관을 만든다. 이처럼 북악산에서 흘러나와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광화문광장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옥상정원에서부터 광장 그리고 지하로 이어지는 입체적 식재를 통해 일상의 작은 공간들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며 큰 상징을 담는 한국적 경관을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