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개념으로 전개하는 건축적 사유의 세계
<미지의 문>은 우리를 새로운 건축으로 인도하는 ‘사유의 문’이다. 그 사유는 저자 김종진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 교수의 사유로부터 독자 자신의 사유로 이어진다. “다양한 관점을 읽고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떠한 관점을 가질 것인가를 묻는 일, 바로 그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이다.”라고 저자는 책 말미에 밝히고 있다. 글은 타자와 교감하고 연대하는 일이라 한다. 저자 김종진은 사유의 동참을 이야기한다. 이런 동참과 연대를 통해 그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글’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자유로운 현실의 세계’일 것이다.
“나는 건축을 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건축이 이러해야 한다는 식상한 관습을 뛰어넘어 가능한 한 가변적이고 확장성을 갖고 있으며 미묘하고 창의적인 건축으로 나의 건축에 대한 시야를 확대해 주기 때문이다.” 준야 이시가미Junya Ishigami가 자신의 에세이 <자유로운 건축Freeing Architecture, 2018>에서 밝힌 ‘자유로운 건축’에 관한 생각이다. 그의 얘기처럼 ‘건축을 보다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것’은 건축이 근대 합리주의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건축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성찰인 것이다.
저자는 ‘경계’, ‘사물’, ‘차원’, ‘행위’, ‘현상’, ‘장소’라는 여섯 개의 개념을 섬세하게 전개하고 있다. 각각의 개념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사유의 대상들이다. 건축과 예술, 철학을 넘나드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사례들과 저자의 생각은 우리가 익히 아는 관념의 틀을 깨고 각각의 개념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의 대상은 감각과 느낌의 세계이다. 전작인 <공간 공감효형출판, 2011>에서 이미 논한 바 있는 ‘오감과 건축의 관계’를 한층 확장해 특유의 시적인 방식으로 세밀하게 설명해 나간다.
‘경계’의 이야기는 2003년 ‘새로운 시대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일본에서 열린 센트럴 글라스 국제건축디자인 공모전의 수상작으로 시작한다. “수상작은 다른 작품들과 매우 달랐다. 하얀색의 A1크기의 종이 중앙에는 거칠게 칠한 두터운 검은 선이 세로로 길게 그려졌고, 그 속에 작은 네모난 공간이 있다. 검은 선의 양옆에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간단한 설명이 나열됐다. 칭화대학교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은 놀랍게도 감옥의 담 속 도서관이었다.” 담 속 도서관이라니. 이들이 제시하는 경계는 두 세계를 나누며 동시에 소통시키는 경계이다. 저자는 다양한 경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한정된 건축가와 예술가의 제안일 뿐이며,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형태의 경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실험적인 작품보다 일상 속 경계의 작은 변화가 더 실험적일지도 모른다고도 말한다.
‘사물’의 이야기 중 특히 ‘동사적 삶을 권함’에서는 제목 그대로 독자에게 동사적 삶을 권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라벨을 찾아볼 수 없는 무제움 인젤 홈브로이히의 사례를 들어 작품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먼저 ‘경험’하도록 권한다. 작품 속으로의 몰입과 미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새로운 생각의 탄생과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동사적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차원’, ‘행위’, ‘현상’, ‘장소’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저자는 공모전, 현대 미술, 공간, 건축, 철학과 문학 심지어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끊임없이 작품 자체를 넘어 작가의 삶이나 그 작품이 속하는 사회적 상황의 맥락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앞서 말한 대로 ‘명사로서의 이해’가 아닌 ‘동사로서의 들여다보기’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거대한 ‘현상의 바다’ 속에 빠져있으며 절대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심해 생물과 같다고 말한다. 더불어 현상의 세계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이런 유동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물어야 하며,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행위 속에서만 세상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영역과 영역의 열린 경계에 가능성의 세계가 있고, 세상을 바꿀만한 상상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미지의 문’이다. 독자가 이 책을 펼치면 깊은 문으로 들어가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만지고, 차원을 넘나드는 미로와 같은 여러 갈래의 길들을 걷게 된다. 때로는 휘어지고 겹겹이 주름져 있는 빛의 바다에서 즐거운 유영을 하기도 한다. 독자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비로소 문을 통과해 문밖의 세계로 나온다. 독자는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조금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 김종진은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은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다시 독자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주제의 각 장이 일관된 맥락으로 전개되고, 순도 높은 사유로 가득한<미지의 문>은 이 전에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저작이다. 이 책 자체가 경계의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책에 실린 많은 사례와 사유들은 이론과 지식이 아니라 어느 너머를 가리키는 수많은 손가락처럼 보인다. 저자 김종진은 아직 열리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우리 각자가 열어가도록 다음과 같이 책의 끝을 닫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수많은 미지의 문이 발견되고,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결국 새로운 삶의 발견이자, 탄생이기 때문이다.”
글 / 임윤택 _ 주.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전무이사